연구실 선배가 도서관에서 파운데이션 1권을 빌려왔길래 냉큼 가져다가 읽었다. 처음 파운데이션을 읽었을 때가 아마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그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 전자책 버전을 구해서 아이패드로 밤에 자기 전에 읽었는데 lcd 화면으로 책을 읽는 피로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고 해도 계속해서 찾아내는 것은 지금의 내가 만들어낸 허위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그 기억들이 증발해버렸다고 생각하니 지금이라도 글을 써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재미있게도 지금 이 글도 아이패드로 쓰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가능성의 장을 느끼는 존재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젠 있지도 않은 과거의 기억을 내 멋대로 상상하면서 지금의 내가 주장한다. 사실 뭐 대단한 주장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은 그리 어색한 것은 아니다. 내 과거도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끔이지만 미래가 보인다고 느낄 때가 있다.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상당히 많은 경우 미래는 실수의 사칙연산과 같이 닫혀 있는 것 같다. ‘이렇기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이고 저렇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라는 형식의 문장은 꼭 일이 일어난 이후에 발화된다고 해서 그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어떤 관계성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 관계성은 어느 정도 시간 동안 유효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마치 내가 햄버거 가게에서 돈을 내면 햄버거를 받을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파운데이션 또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파운데이션 내의 학문 심리역사학을 창시한 해리 셀던은 사회, 심리, 정치, 경제 등을 모델링한 방정식을 통해 만년 이상의 역사, 100경 이상의 인구를 지닌 은하 제국이 500년 내에 멸망한다고 예측한다. 그리고 은하제국의 멸망 후 3만년 가량의 인류 암흑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해리 셀던은 더 나아가 현재의 은하제국 멸망의 향한 힘의 관성을 되돌리기에는 늦었다고 주장하며 앞서 말한 암흑시기를 1000년으로 단축할 새로운 제국을 계획한다. 이 계획에 따라 10만명의 은하제국 시민을 은하 변방에 위치한 무인 행성에 이주시키며 소설은 시작된다. 이후 자신들을 파운데이션이라고 지칭하는 행성 시민들은 은하제국의 붕괴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군사, 정치, 경제 위기를 맞이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며 은하제국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성장한다.
이때 이 위기를 겪는 과정과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파운데이션의 첫 위기는 이주 50년 후에 발생한다. 은하제국의 붕괴가 시작되면서 은하 제국은 파운데이션이 위치한 변방 성계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변방의 크고 작은 세력들이 성장하면서 파운데이션을 위협한다. 그런데 제국의 기술력을 잘 보존하고 있는 파운데이션과 달리 주변 세력은 첨단 기술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위대한 파운데이션의 첫 시장 ‘샐버 하딘’이 이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국에 기술을 교묘하게 나눠주며 세력 균형을 팽팽하게 유지시켜 어느 세력이 파운데이션을 선뜻 점령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같이 샐버 하딘은 그 자신의 지혜로 위기를 극복했으나 오래 전에 죽은 심리역사학자 해리 셀던이 영상메세지로 찾아와서는 파운데이션이 어떤 위기를 겪었으며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하며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위기를 극복해내어 1000년 후 안정된 은하제국을 만들어내기 기원한다. 여기서 셀던의 표현이 재미있는데 파운데이션과 그 주변 세력은 본인이 만든 수학 방정식에 따라 오로지 하나의 선택지만이 주어진 선택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며, 이 선택에 의해 발생하는 위기 또한 오로지 하나의 선택지로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릴 적 이 같은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유치한 망상 같은 이야기지만 멋진 망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자신은 지금 질문하고 싶다.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 선택들은 어떤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가? 과연 잠재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이런게 흔히들 말하는 패배주의자적인 발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공포감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미래의 내 모습이 별 볼 일 없을까봐 무서운 것이 아니다. 미래가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닐까봐 두렵다. 마치 외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새로운 미래를 펼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미래는 기괴하게 돌아간다. 파운데이션 저자 아시모프가 예측한 미래 기술들 중 상당 수는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는 정말 원시적이다. 이처럼 지금 내가 느끼는 미래 또한 지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기괴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예를 들면 처음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왔을 때는 매일 밥과 김으로 대충 식사를 때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요리하는 것에 미친듯이 빠져있지 않은가. 이 같은 미래의 특성은 또 나를 위협한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래 위에 인생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이 또한 얼마나 무서운가.